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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저리 이야기
[세저리뉴스]송년회/동창회
- 양호근
- 조회 : 3492
- 등록일 : 2011-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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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선하다. 북에서 들려오는 뉴스에 얼마 전 우리들의 중요한 모임도 잊고 있었다. 더 잊히기 전에 써야지 싶다. 휴대전화 문자로 싸인이 왔다. <저녁 7시 합정역 7번 출구>
12월 16일 금요일, 운명공동체 세저리 식구들을 한 자리에 모으는 신호다. 우연이 아닌 운명이었던 그날을 기록한다. 옴 아모가 바이로차나 마하 무드라 마니 파드마 즈바라 프라바릍타야 훔.
# 운명 1. 왜 하필 합정(合井)인가?
세저리에서 버스로 2시간 하고도 30분. 지하철로 40정도 달려서 그곳에 도착했다. 왜 하필 우리는 합정에서 모였을까.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세저리에 입주했을 때, 가장 먼저 찾는 곳은? 그렇다. ‘배론성지’다. 뽕 파더는 우리를 뽕카에서 쑤셔 넣고 과속방지턱을 날아 그곳으로 향한다. 도착하면 뽕 파더는 배론성지 곳곳을 안내하며 우리에게 박해를 받더라도 끝까지 견디라고 넌지시 교육한다. 그리고 우리는 세저리 토굴에서 매일을 기록하며 고통을 견뎌낸다. 그렇게 살아남은 선배들이 합정에 모였다.
합정의 원래 이름은 합정(蛤井)이다. ‘조개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우물 바닥에 한강에서 흘러들어 온 조개껍데기가 많이 있었는데, 이 우물은 칼을 빨리 갈기 위한 것이었다. 병인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의 목을 베기 위해 만들었다 한다. 합정역 7번 출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절두산순교박물관이 있다. 뽕쌤이 이날 조금 늦었던 것은 칼을 갈기 위해 우물에 다녀왔던 것이다. 뽕쌤이 모임에 와서 한 첫마디 “오늘 취하지 않고 걸어 나가지 못할 것이다.” 취하지 않은 자는 목을 베겠다는 말이었다.
뽕쌤은 망나니 왕범준을 시켜 칼춤을 추라했다. 마이크를 휘두르며 등장한 왕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뽕쌤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이슬기와 선희연도 뽕쌤의 명령을 받은 망나니들이었다. 의리게임으로 우리를 취하게 하려던 이슬기는 어쩌면 우리의 생명의 은인일지도... 나는 목이 잘리는 게 두려워 애써 취한 척했다. 아마 수많은 세저리민이 취한 척 연기하느라 힘들었을 것이다.
# 운명 2. 왜 하필 카오카오(Kao Kao)인가?
세저리민은 지하를 좋아한다. 서울만 오면 왜 땅 속으로 기어 들어가는가? KAO. 한국 작전지역(Korean Area of Operations)이라서 그런가? 이봉수 장군을 필두로 권문혁, 제정임 참모총장의 지휘 아래 우리는 지하에 모였다. 권쌤은 언론사에 있었던 시절이 그리우셨는지 30분이나 일찍 자리에 와 계셨다. 맥주와 소시지를 드시며 우리를 반기던 권쌤의 미소.
KAO. 그래 카오는 일본어로 얼굴이다. かお[顔] - 얼굴, 낯이다.
중국어로는 考[kao]가 카오가 - 늙을 고, 생각할 고다.
얼굴이 늙은 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카오카오인가.
오랜만에 만난 벗들의 낯빛은 많이 좋아졌다. 서동일과 이보라는 돈맛을 봤는지 낯에서 기름이 번들번들 흘렀다. 아사다마오 홍윤정은 대기업 취업이 행복에 겨운지 웃음을 참지 못했다. 변태섭 선배와 김상윤 선배의 얼굴에서는 여유와 연륜이 느껴졌다. 작은 하늬는 진짜 작았고, 큰 하늬는 진짜 컸다. 이영은 선배에게서는 포스가 느껴졌다.
인사를 잘 나누지 못했지만 자리에 눈빛을 교환했던 김아연, 박소희, 방연주, 서영지, 이수경, 이애라 선배도 기억난다. 미소가 아름다운 손경호 선배는 여성들에게 둘러싸여 몸 둘 바를 모르고 있었다. 작은 체구에도 당당함이 느껴지던 유정화 누님, 블로블로 타블로 태희형...
열매 장사하는 성원이와는 사랑의 포옹을 했다. 곽영신·윤성혜 노부부는 테이블 구석에서 식기도를 하고 있었다. 술 취한 세라쿠는 제정신이 아니었고, 김인아는 간만에 봐도 식탐이 여전했다. 포켓걸 민보영과 리틀 제쌤 송가영은 이 자리에서도 막내의 귀여움이 묻어났다. 제일 잘 나간다고 자기를 소개해 좌중을 웃겼다 전은선, 너무 행복해 보이던 도니도니 상돈이형, 아티스트 안세희, 오다기리조 친구 선필이형, 늘 대왕 포스를 풍기는 혜아 누나...
우리 동기들도 잘 놀았다. 홍대여신 희진양이 노래를 부르는 사이 구슬이는 술을 들이키더니 경애쌤 집으로 사라졌다. 강민이는 부산을 그리고 있었고, 동현이는 술병을 들고 다니다 결국 쓰러졌다. 오랜만에 등장한 슬기 누나는 복귀 가능성을 내비쳤고, 승태는 영상을 찍으며 돌아다니더니 경애쌤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윤정이는 봉 파더 옆에서 맏며느리 역할을 철저히 했다. 대구에서 올라 온 창기형은 자신이 대구 실세임을 자랑했다. 경현이는 권쌤을 보좌하다 어딘가로 사라졌고, 새찬이는 내내 과묵한 척하고 있었다. 지원이는 오빠 신발만 외쳤고, 지현이는 술 취한 자들을 열심히 챙긴 것 같다. 종헌이는 먼 곳에서 선배들과 인생상담을 하고 있었다. 혜정이는 제쌤 곁에서 희정이는 봉쌤 곁에서 먹는 것에 열중하고 있던 것으로 기억된다. 원석이는 모두를 챙기느라 나까지 친히 공덕동으로 모셔가셨다.
5기 친구들이 왔다. 쉽지 않았을 텐데... 역시 늙은 얼굴이기에 가능했다. 나와 동갑내기 셋이 왔다. 노래 부르며 춤추던 류대현과 최욱 그리고 나이를 밝힐 때 어깨에 힘이 들어갔던 경진주.
몇몇 1기 선배님들의 존함이 기억나지 않는다. ㅠㅠ 지금 천일의 약속을 보면서 글을 쓰는데... 나도 벚꽃이 질 때 죽어야 하나.. 기억이 안나. 술이 덜 깬 다음날 아침... 공덕동 튀김을 한 입도 먹지 못한 게 왜 이리 슬플까.
우리 새해에 다시 만납시다. 저녁 7시 합정역 7번 출구.